본문 바로가기

PHOENIX HOTELS & RESORTS

HOME > 이벤트 > 휘닉스 매거진 > 아일랜드 파크

한 사람을 위한 책 처방사 정지혜의
스노우파크 여행자를 위한 북 큐레이션


안녕하세요. 한 사람을 위한 책을 처방하는 ‘사적인서점’의 운영자 정지혜입니다. 서점 안팎을 넘나들며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양한 일을 합니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와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를 썼습니다. 자연과 산책,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에서 쉼을 얻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사적인서점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열리는 예약제 서점입니다. 손님 한 분 한 분의 독서차트를 작성하고, 취향과 관심에 맞는 맞춤책을 처방해 드리지요. ‘책처방 프로그램’은 책처방사와의 일대일 대화 후 맞춤책을 처방해 드리는 사적인서점의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약 1,400여 명의 손님이 책처방 프로그램을 이용하셨어요. 

오늘은 특별히 윈터 올인클루시브를 직접 즐겨본 후에 저처럼 휘닉스 평창에서의 겨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한 맞춤 책처방을 준비했어요. 저는 여행을 갈 때 해당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그 나라 출신의 작가가 쓴 책, 혹은 여행 테마와 관련된 책을 챙겨 가는데요. 여행을 준비하는 소소한 재미랍니다. 이번엔 겨울여행답게, 눈(雪)이 자주 등장하거나 겨울이 배경인 책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얼어붙을 듯 춥다. 여느 때와 다르게 영하 18도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다. 더이상 내 모국어라 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자면, 이 눈은 카니크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첫 문장이에요. 극지방이라 눈 이름이 발달한 그린란드에서는 결이 고운 가루눈을 '카니크'라고 부른대요. 이누이트족 사냥꾼 어머니와 덴마크인 의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는, 눈(雪)과 얼음을 읽어 내는 데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지요. 스밀라는 아랫집에 이사온 6살 이누이트 소년 이사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눕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야가 눈 덮인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되고, 스밀라는 사고사로 처리된 현장에서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타살의 정황을 발견해요. 스밀라가 이사야의 죽음에 얽힌 음모와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긴긴 겨울밤을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은 추리소설입니다.

두 번째로 챙긴 책은 표지에서부터 겨울 냄새가 묻어나는 소설 <줄리아나 도쿄>입니다. 도쿄와 오타루를 배경으로 상처받은 두 사람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받는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줄리아나 도쿄>를 읽으면, 꼭 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마지막 책은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입니다. 성동혁 시인은 어린 시절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았다고 해요. 소아 난치병 환자로 병동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투병 중이지요. 아픈 몸으로 사는 그이지만 행운처럼 만난 사람들이 대신 걸은 걸음 덕분에 많은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차를 펼치면 유독 눈과 겨울, 추위와 관련된 제목의 글이 눈에 띄는데요. 시인에게 겨울은 아프고 두려운 계절이기 때문이에요. <뉘앙스>에는 시인을 살게 했던 사람과 몸과 시와 감각에 대한 이야기들이 살뜰히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질 거예요.

많은 분들이 책을 ‘못’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여유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독서는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능동적인 행위라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어야 즐길 수 있거든요. 내가 정신없고 바쁜데 책을 읽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틈날 때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일부러 책을 읽기 위한 여유를 만들라고 말씀 드리는데요.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은은한 조명을 켜두고, 일요일 오전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향을 맡으면서, 이런 식으로 내가 언제 어느 곳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시간과 장소에서 일부러 책을 읽는 거예요. 책을 핑계로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을 만드는 거죠. 책을 읽는 순간이 행복하고 풍요롭다고 느낄 수 있어야 자주 읽게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북캉스를 자주 가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평소에는 일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에 둘러싸여 있다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으면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거든요. 좋아하는 입욕제를 챙겨 와서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노곤노곤한 상태로 바스락거리는 깨끗한 침구 위에서 밤 늦게까지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해요. 


휘닉스 평창의 올인클루시브 패키지에는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온도 레스토랑에서 조식 뷔페를 먹을 수도 있지만 베이커리 카페에서 음료와 크로와상을 먹을 수도 있더라고요. 아침 일찍 일어나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받아 올라와서 객실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면서 아침 독서를 즐겼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스카이 로얄 객실 중 책 읽기 좋은 스페셜 플레이스가 있는 ‘다도룸’에 묵었는데, 좌식 테이블에 앉아 고소한 빵 냄새 맡으며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통창 너머로 창 밖으로 눈 쌓인 풍경이 보이고… 이렇게 호사스러운 월요일이라니! 

겨울 풍경도 이렇게 좋은데, 녹음이 우거진 여름 풍경은 어떨지 궁금하더라고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친구들과 와도, 가족들과 와도, 언제라도 누구와 함께여도 좋은 곳. 여름에 휘닉스 평창을 다시 찾고 싶어요.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호사스러운 북캉스를 즐기는 것도 기대되고, 웰니스 숲길 산책도 해 보고 싶네요.